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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가벼운이야기
    여백에물든붉은노을 2007. 8. 1. 09:52
    (울회사홈이쁘게바뀌었더군 ㅋ 거기서발견한 글 끝까지 잘 읽어보자)

    -워크샵-

    워크샵은 때가 되면 가는 행사가 아니다.
    워크샵은 야유회도 아니고
    단합대회도 아니고
    그저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장도 아니다.

    많은 회사와 리더와 구성원들이
    워크샵에 대해 뭔가 오해 하고 있다

    2001년 5월 1일
    남의 회사에 얹혀살던 프레인은
    주인 회사가 노는 노동절날을 택해
    회의실 한구석에서 첫 워크샵을 진행했다.
    그뒤로 2005년까지 내가 직접 진행한
    워크샵을  기억나는 대로  정리해봤다.

    지금 출발하는 회사
    비슷한 길을 가는 회사는
    그 시점과 해법과 그냥 넘기지말아야 될 포인트에 대해
    참고해 볼만 할것같다.



    첫번째 워크샵
    직원넷이던 시절.
    직원 한명이 물었다 “사장님 우리회사는 비전이 뭐죠 ?”  
    나는 속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비전? 우리 같은 처지에선 내일 벌이가 비전이야”
    지밥벌이도 못하면서 겉멋은 알아가지고 비전 찾다 망한회사 많이 봤던 터다.
    하지만 겉으로는 그렇게 대답할수 없었다.
    프레인에서 일하면 어떤 가치를 얻을수 있는지에 대해 처음 생각해보고
    그 생각을 말했다.




    두번째 워크샵
    비로소 우리도 “회사”라고 불러야 할때가 왔고
    “회사”라면 웬지 이야기 해야 될것만 같은 단어들 ? 매출, 이익, 인센티브, 출퇴근, 규정 ..- 을
    우리회사에 맞게 정의 했다.



    세번째 워크샵
    직원이 10명이 넘었고
    이제 그 들의 개인 경쟁력에 대해 말해야 할 때가 왔다
    PR컨설턴트가 가져야할 필수 스킬을 16개로 정리했다
    한사람 한사람에 대해 그 16개중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 표로 만들어 평가해줬다
    모든 직원에 대해 내가 정확히 평가할 수 있던 때였다.



    네번째 워크샵
    모든 비즈니스가 나로부터 시작되었고
    내가 마무리 해야하는 구조였다.
    같은일도 내가 하면 되고 직원이 하면 되지 않던 시절이다.
    “being Jason yeo” 라고 제목붙인 파일을 만들었다.
    내가 할줄 아는 것들을 다 적어놓고
    모든 직원이 이걸 다 할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걸 할줄 알기 위해선 뭘 공부하면 된다고 개인별로 과제를 줬다.
    이제부터
    나 대신 고객을 만나고 나대신 프레젠테이션을 하라고 위임했다.



    다섯번째 워크샵
    개인이 혼자하는 일 보다  조직이 함께 하는 일이 늘어나고
    그에 따른 개편이 필요했다.
    부서도 생기고 직급도 생기고 책임도 나눴다



    여섯번째 워크샵
    회사는 성장하고 있었지만
    직원들의  “입장의 동일함”은
    희미해졌다.
    파벌도 보이고 반목도 보였다.
    그걸 해결하는 워크샵을 진행했다.
    주제는 “2002 동감”



    일곱번째 워크샵 - Reload
    매트릭스 리로디드가 개봉하던 즈음이었다.
    바깥에서 수군대기 시작했다.
    프레인이 저러다 망한다. 너무 키운다, 잘나가니 밉다.
    지원자가 몰리기 시작했다
    프레인에서 일하는게 꿈이예요, 프레인을 너무 사랑해요.
    안에서는 초심이 흔들렸다.
    이제 일이 좀 지겨워져요..

    남쪽 지방 어느 산속에서 텐트를 쳐놓고
    숲 허공에 빔을 쐈다
    그리고 리로드 했다



    여덟번째 워크샵
    내년계획이란걸 처음 말한 자리다.
    이제 다음달이 아니라
    내년을 말할수 있게 된 거다.



    아홉번째 워크샵 -공진화워크샵
    조직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개인은 희생했다.
    생물학 책을 보다가 공진화 이론을 보고 무릎을 쳤다.
    조직과 직원이 함께 진화하는 회사를 만들 방법을 정리했다



    열번째 워크샵
    회사에 대한 두가지 주장이 공존했다
    더 키워야 한다. 이제 성장을 잠시 멈춰야 한다.
    더 키우는것에 대한 두려움이 대세였다
    경제학 원론책을 바탕으로
    프레이지노믹스를 만들었다.
    더 키워도 괜찮다는 정답이 수학적으로 도출되었다.
    프레이지노믹스는 내 개인의 궤변이 아니라 경제이론을 그대로
    적용했기 때문에  아무도 반대하지 못했다.
    반대하려면 A. 마셜을 반대했어야 하는데 그게 쉬운가.
    이론은 옳았고  지금도 유효하다.



    열한번째 워크샵
    국내 PR산업에
    100명이 100억을 버는 회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할수도 없어 보였다.
    이지영, 이정, 구연경을 데리고 제주도로 내려가
    100명이 100억을 버는 PR회사 구조를 만들었다.
    전혀 불가능할 것 같아 보이는 일이었지만
    지금 프레인은 100명이 넘는 직원이
    100억을 넘게 벌고 있다.
    준비없이 저절로 된거라면 감내하기 힘들었을거다.



    열두번째 워크샵
    조직이 커지면 두가지를 해결해야한다
    효율과 시너지
    계열사가 늘어나면서  효율이 위협받기 시작했다.
    PCG라는 이름하에 각사가 보유해야할 핵심기능을 제외한 업무 영역을
    통합했다.
    한편으로는 시너지 맵을 구성해
    고객이 원하는 모든 일을 해줄수 있는
    원스톱 그룹사의 모습을 갖추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사건 이후로
    대부분의 PR회사들이 그룹화된 PCG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한 사장의 고백을 빌자면
    “프레인은 공공의 적이니, 프레인에 맞서려면 우리끼리라도 뭉쳐야한다
    우리도 먹고 살아야지않겠나”
    고 생각했단다.  그 구차한 발상으로 연합한 기형회사가 지금 업계에서
    사못 진지한척 하고 있단다. 풋.



    열세번째 워크샵
    1위에 올라선 프레인은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했다.
    승승장구할수록 교만하면 안된다고 말하고 싶던차에
    다행히 분기 실적이 좋지 않았다.
    나는 그 내용을 좀 더 비극적으로 과장해서
    큰 위기라고 호들갑 떨며 발표하고 대책을 마련했다.



    열네번째 워크샵
    좋은 직원의 육성에 쏟았던 힘을
    좋은 리더를 육성하는데 쏟아야 할 때가 왔다.
    이날 이후로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
    내가 할수 있는 일은 100명을 다 챙기는게 아니라
    100명을 다스릴 10명을 키우는 것이었다.
    리더 워크샵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열다섯번째 워크샵
    중간 리더들은 툭하면 “이제 회사는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라고
    내게 조언했다
    당시 내가 그들 각자 에게 맡긴 인원은 고작해야.
    한때 내가 프레인 리더로서 모든 부하직원 집에 있는 숟가락 숫자까지
    알던 때와 비교하면 반의 반도 되지 않았다.
    나는 “시스템”은 “사람이 직접하지 못할 때” 차선으로 선택하는 것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내 부하직원을 내눈으로 일일히 보지 못할 때 “인사 평가 시스템”이 필요한거고
    내 돈을 내가 다 세지 못할 때 “재무 평가 시스템”이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절대 손으로 일일히 하는것보다 높은 질을 보장하지 않는다
    시스템을 도입하되 그 철학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열여섯번째 워크샵
    열네번째 워크샵의 결과 내가 가진 지식이
    조직의 가장 끝까지 전달되지 않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큰 조직에서 흔히 있을수 있는 일이며
    더 커질 프레인은 언제든 극복해야할 일이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아주 기가막힌 방법이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질량보존의 법칙” 이다.
    나는 상대성 이론과 질량보존의 법칙을 패러디해서
    내 지식, 내 경험이 왜 질량보존되지 않는지를
    리더들에게 설명하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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